1980년 광주에 있었다던 '자칭 북한군' 김명국씨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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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22회 작성일 19-05-27 09:10본문
박근혜정부 첫 해, 첫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3일 앞둔 2013년 5월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5·18 북한군 개입의 진실’편을 내보내며 남파 특수군 최초 인터뷰라는 타이틀을 걸고 호들갑을 떨었다. 자신을 1980년 광주에 있던 북한군이라 주장한 김명국(가명)씨의 주장은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이 사건은 채널A의 사과방송으로 끝났다. ‘북한군’ 김명국씨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광주폭동 참가했던 사람들은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어요.” 채널A에선 김명국씨의 육성만 나왔다. 이날 방송에선 2006년 한국에 온 김명국씨를 30여 차례 만나 증언록을 집필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 이주성씨(한반도평화국제연합 대표)와 서석구 변호사가 출연했다. 스튜디오에선 ‘김일성, 광주사태 북한군 남파 명령’이란 제목의 책도 소개됐고, 김명국씨는 1980년 5월27일 오전 9시 철수명령을 받았으며 철수 도중 국군과 만나 교전했다고 주장했다.
▲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의 한 장면. 가장 왼쪽에 모자이크 처리된 이가 김명국씨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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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채널A 방송 이틀 전인 5월13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도 자신을 북한 특수부대 대위 출신이라고 밝힌 탈북자 임천용씨가 출연했고 그 역시 “광주민주화운동은 북한의 특수군 개입에 의해 움직여진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섭외와 편성을 조율한 것처럼, 5·18을 앞두고 두 종편에서 잇따라 ‘5·18 북한군 개입설’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 무렵 한국사회는 이 소란을 잠재우느라 소중한 지면과 화면을 낭비했고, 5·18 희생자와 유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5·18 역사왜곡대책위는 채널A와 TV조선 출연자를 형사 고소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정인기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주성·임천용·김명국(가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으나 모두 2014년 3월과 4월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더라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집단 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개개인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희석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무혐의 이유였다”고 밝혔다.
김명국씨의 경우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수사를 지휘했으며 2014년 4월22일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15년 1월22일자 서울고등법원 제26형사부(판사 윤성근)가 내놓은 이 사건 재정신청에 관한 결정문의 한 대목은 이랬다. “피의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부대 1개 대대가 침투하여 전남도청에서 활약하였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18 민주유공자는 4000명 이상에 이르고 5·18 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등록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 대다수의 일반참가자들까지 포함하면, 이러한 발언 내용이 5·18 민주화운동 참가자들 개개인에 대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 구성원 수가 적다고 할 수 없고, 또 5·18민주화운동은 이미 법적 및 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여서 이러한 발언을 통해 참가자들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놀랍게도 이들 셋은 모두 무죄였다. 피해자가 존재하는데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섭외했을까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섭외된 걸까. 5년 전 방송에서 김명국씨를 직접 만났다고 밝힌 김광현씨(동아일보 논설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이주성씨과 김명국씨의 섭외과정을 묻고 싶다고 말하자 “물어보지 마라. 지나간 일이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당시 방송은 김광현씨가 주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진행자 김광현 동아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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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국방부에서 (5·18당시) 헬기가 (시민들에게) 사격했다는 게 더 황당한 이야기에요. 북한군이 광주에 들어왔다는 것과 똑같은 비중의 페이크뉴스라고 봅니다.” 더 이상 들을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섭외됐을까. 2013년 6월5일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원회 회의록을 찾았다. 프로그램 징계 심의를 앞두고 의견진술에 나선 오동선 TV조선 보도본부 전문위원은 “(채널A와) 전혀 교감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달아 방송이 나간 건 우연이라는 의미였다.
도대체 이 방송은 왜 나간 걸까. 오동선 전문위원의 답은 이러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앞둔 시점에서 아이템을 고민하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개입되었다는 일부 탈북자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사실처럼 유포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루머의 재생산을 해소할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으로 아이템으로 선정하게 됐다. 탈북자 임천용씨는 마침 5월 초 남한 내 북한 땅굴을 주제로 방송에 모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전혀 예기치 못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언급했다. 이분이 이런 루머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쉽게 말해 루머를 해소하기 위해 섭외했다는 것. 하지만 TV조선은 루머를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이날 의견진술에서는 섭외과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
채널A는 어떤 입장이었을까. 같은 날 의견진술에 나섰던 권순활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의 발언은 이러했다.
“당시에 북한에서 왔다고 밝힌 2006년 탈북자를 찾아 가지고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이 자체가 전언이 아닌 본인의 이야기이고, 본인이 그 진술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부분도 감안해 주길 바란다.”
반성의 기미가 없는 의견이었다.
“진행자(김광현)가 경험이 전혀 없는 기자가 아니고 기자경력 22년이 넘는 기자이기 때문에…직접 찾아서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했지만 단순 전언이 아니라 직접 왔다고 밝힌, 내용을 보면 굉장히 구체적이다. 날짜별로 어떻게 했고, 어떻게 돌아갔고, 어떻게 왔다고 한 부분을 통째로 거짓말한다고 믿기는 쉽지 않은 부분이고, 충분히 합리적 의심이나 합리적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과보다는 앞으로 계속 규명해보겠다는 식이었다.
권순활 부본부장은 “제작진은 김명국(가명)이라는 사람이 한국에 왔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거짓말이라면 전혀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역시 섭외과정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
TV조선과 채널A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방송사가 문을 닫아도 될 만큼 사안의 중대성이 컸던 것에 비하면 징계는 가벼웠고 이 사건은 박근혜정부의 수많은 실패 속에 그저 게이트키핑이 부족했던 한 번의 실수처럼 잊혀졌다.
▲ 채널A,·TV조선 중징계 관련 KBS 뉴스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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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에게 인터뷰 대가로 돈 줬던 국정원
다들 박근혜정부에서 자행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유우성씨는 박근혜정부 인수위 시절이던 2013년 1월 기소됐다. 1심 재판에서 그는 간첩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뒤 2심 재판이 진행되던 2014년 2월24일자 동아일보에선 유우성씨를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한 탈북자 A씨의 인터뷰가 등장했다. 그는 유씨를 간첩으로 지목한 최초 신고자이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 인터뷰에는 국가정보원이 개입돼있었다. 국정원은 A씨가 법정에서 ‘유씨가 보위부에서 일했다’는 증언에 나서기 직전인 2013년 6월 800만원을 입금했고, 김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후 그해 7월 또다시 1000만원을 지급했다. 간첩신고에 따른 보상금 명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주선했고 동아일보 보도 이후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A씨를 찾아가 현금 200만원을 줬다. A씨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2017년 재판부는 유씨가 제기한 명예훼손소송에서 동아일보에 정정보도와 함께 1000만 원 손해배상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인용보도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사가 언론의 공적‧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면제된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2017년 3월6일자 지면에 “사실 확인 결과, 유우성이 간첩행위를 하였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간첩 혐의에 대하여는 무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는 짤막한 정정보도문을 냈다. 진짜 짧았다.
당시 간첩조작사건으로 유일하게 실형선고를 받은 이는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보현 과장이다. 그는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4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김 과장 선에서 꼬리가 잘렸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당시 유우성씨를 변호했던 김용민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용민 변호사는 “국가정보원이 탈북자들의 방송 출연부터 토론회·강연 섭외까지 관리하고 있다고 탈북자들로부터 들었다. 강사료나 출연료를 주는 방식으로 탈북자를 관리하고 있어 돈을 벌기 힘든 탈북자들 사이에선 국정원만 바라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간첩조작사건처럼, 5년 전 5·18 왜곡방송 역시 국정원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탈북자들의 사정에 밝은 북쪽 출신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ㄱ기자는 “누가 봐도 (북한군 개입이) 거짓말인데 국정원이 김씨를 방송국에 섭외하겠나”라며 국정원이 섭외할 만한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ㄱ기자는 “저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잃을 게 없어서다. 지켜야 할 명예도 없기 때문에 그럴듯한 소설을 쓰는 것”이라 말했으며 “김명국씨가 누구인지 주변에 물어본 적이 있는데 탈북한 뒤 국내에서 적응을 못한 케이스로 들었다”고 전했다.
ㄴ기자의 말은 조금 달랐다. “북에 (광주 북한군 투입) 소문이 돌았던 건 사실이지만 (김명국씨)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탈북자들이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해 남쪽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 만큼 거짓증언을 하는 이가 더러 있다.” ㄴ기자는 “보수정부에서 탈북자들이 국정원 돈을 받고 국정원 데스킹을 받으며 칼럼을 개재하고 방송에 출연했던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명국씨를 직접 만난 김광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정원 섭외 의혹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의 한 장면. 가장 왼쪽에 모자이크 처리된 이가 김명국씨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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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김명국씨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극우성향 유튜브채널 ‘참깨방송’ 2015년 9월9일자와 2016년 7월3일자 방송에선 김씨의 주장이 육성으로 등장한다. 김씨는 광주작전의 목표가 국가 전복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군 개입설’은 여전히 유튜브를 통해 떠돌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투입설을 공식석상에서 처음 거론한 인물은 전두환씨였다. 전두환 회고록 1권에도 이 내용이 나오는데 허위사실로 인정해 법원이 이 부분 삭제명령을 내렸다. 미 국무부 비밀문건에 따르면 5·18 직후 전두환씨는 1980년 6월4일 주한 미상공회의소 기업인 만찬자리에서 “22명의 신원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북한 침투요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으며 “책임은 김대중에게 있으며 기소해서 입증하겠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이 있다. 독일은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형사 처벌한다.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독일인은 없다. 한국은 어떠한가. 용납돼선 안 될 주장이 그럴듯한 가짜뉴스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희대의 왜곡방송사건 진상을 온전히 추적하지 못했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가짜뉴스를 유포했던 방송사 사주들은 지금도 버젓이 방송사업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미디어오늘은 1980년 광주에 있었다는 탈북자 김명국씨를 찾습니다. 또는 5년 전 채널A와 TV조선의 왜곡방송과 관련해 당시 방송경위를 증언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제보전화=02-2644-9944, 제보 이메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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