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분만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저리가' 화를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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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빅에스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46회 작성일 18-10-26 11:33본문
배가 아픈 환자가 병원에 왔다.
"하나도 안 아플 때 0점, 가장 아플 때 10점이라면 몇 점 정도로 아프세요?"라고 물어본다.
환자들은 보통 9점이라고 한다.
그분들 입장에선 아파서 병원 올 정도면 '뭐 이런 걸 물어보고 있나'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이럴 때 질문을 바꿔 "분만의 통증을 8점이라고 하면 그것보다 아프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백이면 백, '아니요'라고 한다. 분만하는 게 얼마나 아프면 이럴까 싶었다.
분만하는 과정을 워낙 많이 보다 보니 남편들의 가지각색 반응을 보게 된다.
"자세 똑바로 잡고 하나 둘 셋 힘을 줘야 한다"며 옆에서 응원하는 스파르타식 남편, 본인이 분만하는 양 울고 있는 남편, 아내가 아파할 때마다 의사들을 붙잡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사정하는 남편 등 다양하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아등바등하는데, 아내들은 남편에게 "저리 가"라고 화를 낸다.
의사가 된 지 2년10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내가 임신부가 됐다.
그리고 그동안의 의문이 모두 풀렸다.
◇직접 체험한 '임신부의 고충'
사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불편한 것이 더 많았다.
임신 초기에는 속이 안 좋아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허리와 골반의 통증은 점점 늘어났다.
누워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게 왜 이리 힘든지…. '그간 나를 찾아온 임신부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을 하면서 가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태교는 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 등이다.
병원에서 선후배 의사들이 많이 배려를 해주셨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정성스럽게 태교를 할 시간은 아무래도 부족했다.
간혹 너무 피곤할 때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초음파를 통해 아이에게 안부를 물었다.
콩콩콩 잘 뛰는 심장 소리에 감사했다.
우울함이 찾아오려고 하면 그만큼 보상이 찾아왔다.
날로 살이 찌는 내 모습이 우울해지려고 할 때 아이가 커가는 기쁨, 아이가 발로 내 배를 차는 느낌에서 행복을 찾았다.
다리가 붓는다고 툴툴대면 남편이 마사지를 해줬다.
"나 도저히 밥을 할 컨디션이 아니야"라고 하면 남편이 서투르지만 정말 열심히 요리를 했다.
발이 부어서 신발이 안 맞는다고 속상해하면 남편이 좀 더 큰 사이즈의 신발을 사왔다.
◇"산모들이 왜 화내나 알았다"
대망의 분만 날이 왔다.
잠들 때쯤 10~15분 간격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초산이라 조금 버텨보자 싶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새벽 6시쯤 되니 간격도 줄고,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병원에 갔다.
이때까지는 나는 병원을 너무 이르게 찾지 않고 집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모범 임신부'였다.
병원에 도착한 이후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내가 지켜봤던 많은 임신부처럼 괴로워했다.
"나는 통증에 예민하지 않을 거야" "진짜 쑥 낳을 수 있어"라고 평소에 주변에 말하고 다녔는데,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남편은 당연히 옆에 있긴 해야 하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아플 때는 남편 손보다는 침대 난간을 부여잡는 것이 낫다.
산모들이 왜 자신을 보며 전전긍긍하는 남편에게 짜증을 내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무통주사도 여러 차례 바늘을 찔러넣는 데 실패했다.
"이번에도 무통주사 바늘을 제대로 찔러넣지 못하면 제발 수술해주세요"라고 할 찰나에 무통주사 성분이 흘러들어 오면서 버틸 만한 상황이 됐다.
산모들에게 힘을 주는 방법만 수십 번 연습시킨 내가 정작 힘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태어나자 너무 감격스러웠다.
'앞으론 날 찾아오는 임신부들에게 몇 배로 잘해줘야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조금 더 바빠진다면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난임 부부들의 애타는 사연, 분만 과정에서 찾아오는 여러 위험을 보게 된다.
나와 남편을 찾아와준 우리 딸, 건강히 자라 무사히 태어난 우리 딸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가끔 가족이나 지인들이 "저출산이 자꾸만 심해진다는데 산부인과 의사들은 불안하지 않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누구도 우리의 '엄마'들에게 임신과 출산을 강요할 순 없다.
다만 100일 지난 딸을 키우면서 조금씩 커가는 아이의 모습이 나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말 정도는 이제 해줄 수 있다.
또한 저출산 문제도 이상적인 해법을 찾아서 행복한 표정으로 남편 손을 잡고 나를 찾는 임신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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