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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敵의 머리 베면 벌하겠다" 이순신이 명령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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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머리를 베는 자는 벌을 줄 것이다."

'시체의 머리를 벨 시간에 한 명의 적이라도 더 무찌르라'는 뜻이었다.

1598년 노량해전 당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은 일본군의 수급을 모아 군공(軍功)을 세우는 것보다, 전투에서 힘껏 싸워 승리를 얻는 것에 집중했다.

이순신 장군의 이 말이 기록된 자료가 나왔다.

충무공 연구가인 노승석(50)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최근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주관으로 전남 순천에서 열린 '순천 지역의 임진란사 연구' 학술대회의 발표문 '정유재란기 최대의 국제전 순천왜교성 전투와 노량해전'을 통해 호남 선비 진경문(1561~1642)의 문집 '섬호집(剡湖集)'에 실린 '예교진병일록(曳橋進兵日錄)' 중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 부분을 분석했다.

'예교진병일록'은 1598년 9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벌어진 순천왜교성 전투의 중요한 사료 중 하나다.

순천왜교성 전투는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남해안으로 후퇴해 성을 쌓고 버티던 일본군과 벌인 육·해전 협공 전투.

이 전투에 이어 퇴각하는 일본군을 맞아 바다에서 싸운 마지막 전투가 12월 16일 이순신의 노량해전이었다.

이 자료는 노량해전 당시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인 밤 삼경(三更·오후 11시~오전 1시) "통제사(이순신)가 영을 내려 '왜군의 머리를 베는 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군령을 내릴 것'이라 말하고 좌우의 수군을 지휘해 전투를 독려했다(統制使令曰, 有斬倭首, 輒行軍令, 麾左右舟師督戰)"고 기록했다.

'군령을 내린다'는 것은 중벌에 처한다는 의미다.

노 소장은 이 부분이 1592년 이순신이 임금에게 보고한 장계에 '당초의 약속대로 머리를 베지 않았더라도 사력을 다해 싸운 병사는 신(臣)이 직접 본 것으로써 등급을 나눠 결정했다'고 쓴 것과 통하는 대목이라고 했다.

왜교성 전투 때 조·명 연합군의 총공격을 받은 일본군이 목숨을 애걸한 기록도 있다.

9월 30일 새벽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이 정병 수천 기(騎)로 성을 공격하려 하자 성 위에 있던 일본군은 "예로부터 사람을 모두 죽여버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한쪽 면을 터서 우리를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조선 육군이 명나라 측의 군사 지휘를 거부한 대목도 보인다.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군도 한 면을 맡아 성을 공격해야 한다"고 하자 도원수 권율은 "훈련을 받지 못한 군사들이라 한 면을 맡을 수 없다"고 했다.

유정의 소극적 대응으로 전투는 지지부진했는데, '예교진병일록'은 "(유정이) 한 차례 교전하고 조금 꺾이자 철수할 계획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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