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받아야 이사 갈 수 있는 세입자…'배짱' 집주인에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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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격 하락이 지속하면서 전셋값이 낮아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역(逆)전세난'으로 인한 경착륙 위험이 커지고 있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확대 등 세입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아직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다'라는 입장인데요.
각종 통계자료를 종합해보면, 전세가격이 떨어지거나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현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역전세난이 어느 수준까지 확대할 지가 부동산 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은행 부동산연구포럼에 따르면 이미 경남, 울산, 충남, 경북, 충북 등에서는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2년 전보다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서울 아파트는 전셋값이 평균 7%이상 하락할 경우 역전세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됐는데요.
이처럼 역전세·깡통전세 우려가 커지면서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분쟁이 생겨 민·형사상 보증금 반환 명령을 받아내도 집주인이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보증금 반환은 지연되고, 이사를 하거나 새 집으로 들어가는 일정이 꼬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으려면 전셋집의 권리관계부터 살피고, 보증금 반환 장치를 미리 마련해두는 게 안전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일부 세입자들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한창 올랐던 지난해 가을에 비해서는 하향 조정이 됐지만, 전세 갱신 기간인 2년을 기준으로 보면 전세가격이 올라 '역전세난이 어느 나라 얘기냐'고 반문하고 있어 당분간 부동산 시장의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전셋값 하락으로 역전세난 위험이 커지면서 세입자와 집주인간 전세보증금 반환 분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는 임차인들의 상담 문의와 전세금 반환과 관련한 조정 신청이 늘었는데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위원회에 총 2515건의 분쟁 조정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71.6%인 1801건이 전세 보증금 반환과 관련한 분쟁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어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게 해달라는 조정신청이 10건 가운데 7건을 넘는 것입니다.
이는 유지·수선보수(201건), 계약갱신 문제(143건), 손해배상(156건) 등의 다른 분쟁 사례를 압도하는 수준인데요.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주택임대차와 관련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률 전문가들이 조사를 거쳐 합리적으로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임차인과 임대인은 상호 합의한 조정 결정을 따라야 하고, 조정 결과에 집행력이 부여돼 상호 조정 결과를 이행하지 않으면 별도의 민사소송을 거치치 않고도 세입자가 집을 경매에 넘기는 등 강제집행이 가능한데요.
전문가들은 지난해 지방 지역산업 침체와 입주 물량 증가, 정부의 9·13대책 등으로 지방에 이어 서울·수도권에서도 매매·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며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수도권 매매·전셋값 동반 하락세...세입자 보증금 반환 문제 생길 수도
보증금 반환과 관련한 분쟁 상담, 조정신청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올해 1월 공단에 접수된 주택임대차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총 260건으로, 작년 1월(231건)보다 12.6%(29건)가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40건에 비해서도 20건이 늘었는데요.
특히 서울지역 주택보증금 반환분쟁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작년 1월 조정위원회 서울지부로 접수된 건수는 총 70건으로, 이 가운데 62%(44건)가 보증금 반환 분쟁이었다면 올해 1월에는 그 비중이 76%로 늘었는데요.
전체 88건 가운데 67건이 전세보증금을 만기에 돌려받지 못해 반환 중재를 요청해온 것입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전세 만기가 지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답답한 심정으로 찾아오는 세입자들이 대부분"이라며 "압도적인 증가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전셋값이 하락하고 임대차 순환이 삐걱거리면서 분쟁조정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운영하는 임대차분쟁 조정위원회에도 분쟁조정 상담과 신청이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16년 9월부터 임대차 분쟁조정을 시작한 서울시의 경우 2017년 총 75건의 분쟁조정 신청을 받아 24건의 조정성립이 이뤄졌는데요. 지난해에는 접수 건수가 97건으로 전년보다 30% 가까이 늘었고, 조정 실적도 37건으로 증가했습니다.
올해 들어 1월 한 달 동안에도 총 11건의 분쟁 조정신청이 접수됐는데요. 다만 현행 임대차분쟁조정에는 제도적 맹점이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현재는 세입자가 조정신청을 해도 집주인이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거나, 의사 통지를 하지 않는 경우 신청이 자동 기각됩니다. 집주인이 조정을 거부하면 사실상 무의미한 것인데요.
지난해 대한법률구조공단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2515건 가운데 실제 조정이 이뤄진 경우는 1125건(44.7%)으로 절반 이하에 그치고 있습니다.
조정 요건에 맞지 않거나 전화 상담 과정에서 세입자가 직접 조정을 취한 취하하기도 하지만, 집주인이 조정에 응하지 않아 기각된 경우도 많다는 게 분쟁조정위의 설명입니다.
전문가들은 지방에서도 깡통주택, 깡통전세 문제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분쟁조정위원회를 확대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전셋값 하락, 대출 규제 등으로 자금 융통 어려워진 집주인 "이사가든가, 기다리든가"
대출 규제가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공급 물량이 늘면서 전셋값이 떨어지자 제때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기존 세입자에게 내줄 돈을 융통하기 어려운 집주인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상황인데요.
설령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진다고 해도 전셋값이 2년 전보다 떨어진 곳은 집주인이 받을 돈보다 줘야 할 돈이 더 많아 보증금 중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추후 돈이 생기는 대로 주겠다고 우기는 일마저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전세보증금 반환 문제로 고통받는 세입자의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청원인은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셋값보다 떨어지다 보니 집주인이 '보증금을 못 돌려주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며 "임대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집주인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깡통전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다른 청원인은 "전세 빠지기를 4개월 동안 기다렸는데도 아직 안 나가고 있다"며 "새 학년 새 학기가 다가오는데 아이들에게 전학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만 할 뿐 아무 결정을 할 수가 없어 고통스럽기만 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준 액수는 1607억원으로, 전년(398억원)보다 4배 이상 증가했는데요.
같은 기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건수는 6만1905건에서 11만4465건으로 두 배 가량 늘었습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들어두지 않은 세입자는 더 막막한데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계약 기간이 2분의 1 이상 남아 있어야 합니다.
결국 '최후의 수단'인 강제경매를 신청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역 경기 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임차인의 경매신청 건수가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경매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임차인 혹은 전세권자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경매(강제경매·임의경매 포함)를 신청한 경우는 2017년 108건에서 지난해 125건으로 15.7% 늘었습니다.
지난달에는 전월보다는 5건 많은 17건의 신청이 들어왔는데요.
이 가운데 낙찰가가 채권청구액보다 낮은 건수는 37건이었습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임차인의 경매신청이 증가하는 추세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집주인으로서는 가장 꺼리는 상황이겠지만,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임차인이라면 마지막 수단으로 경매신청을 고려해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전체 주거시설 경매에서 임차인 신청에 의한 경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는데요.
전문가들은 전셋값이 매매가격과 엇비슷하거나 아예 추월해버린 지방과 달리 수도권의 경우 역전세가 아직 위험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전셋값이 하락 추세이긴 하나 여전히 2년 전 가격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장 상황이 불안한 만큼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료를 낮추거나, 만기까지 잔여기간과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세입자 보호 방안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 "지방과 달리 수도권은 역전세난 위험 수준 아냐"…입주량 증가, 일시적 현상일 뿐
현재 전국적으로 역전세난이 가장 심각한 곳은 지방입니다.
지역 산업이 무너져 집값이 급락한 경남·울산, 주택공급이 포화 상태인 충남·충북 등지가 가장 심한 것으로 집계됐는데요.
최근에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도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증하면서 세입자가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지방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볼 수는 없고, 입주량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요.
당장 보증금을 받고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배짱 집주인'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1주택 이상 보유한 집주인에 대한 담보대출이 꽉 막힌데다, 규제지역 내에서는 세입자에 대한 전세자금대출도 쉽지 않아 전세가 빠지지 않는 경우 고스란히 세입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세입자들이 선뜻 민사소송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소송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실수요들은 서울 아파트 전셋값 하락세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매물 자체가 적고,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면 하락률이 미미하기 때문이란 분석입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가격이 정말 떨어졌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네별로 편차가 크다"며 "강동구, 송파구 일대 일부 초급매물을 제하곤 서울 평균으로 보면 전셋값 하락세가 크지 않아 실수요자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전세값 하락이 서울 전반으로 확산되진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특히 급등하기 전엔 2017년 초 시세와 비교했을 때 전세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부연했습니다.
다만 전세가격 낙폭 확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경우 과거와 달리 매매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요.
작년까지만 해도 전셋값을 지지해 상승세를 탔던 매매가격이 이번엔 가파른 전세가격 하락에 맞물려 대세 하락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파트 공급 물량 증가에 이어 기존 세입자가 분양시장 등으로 유입되면서 재계약에 나서지 않아 수급 불일치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주택시장에서 매매, 전월세 거래가 급격하게 줄어들 경우 서민들이 주로 몸담고 있는 부동산중개업, 이사업, 인테리어업 등 관련 산업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데요.
일각에서는 정부가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만 강화할 게 아닌,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거래세를 낮추는 등 실수요자들을 위한 규제완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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