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고분서 1600년 전 별자리 그림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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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빅에스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50회 작성일 18-12-21 16:05본문
함안 말이산 가야고분 석실서 발견
가야시대 별자리판은 처음 나와
가야인 천체 관측기록 보여줘
아라가야 왕성터도 건물터 다수 확인
축축했다.
1600년전 가야인이 올려보았다는 밤하늘 별자리들을 만져본 첫 느낌이다.
어둡고 퀴퀴한 무덤방 천장에서 고대의 별들은 물기에 젖어 반들거렸다.
1m60cm 남짓한 평평한 화강암판에 각기 다른 깊이로 구멍을 내어 별들을 표현한 사람들. 그들에게 별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 별자리 돌판은 4~6세기 6가야 연맹국의 하나로 경남 함안 일대를 지배했던 아라가야국의 대형 무덤에서 최근 발견됐다.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무덤방을 발굴한 결과 천장의 덮개돌 아래에 별자리 구멍(성혈)을 새긴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가야유적에서 처음 확인되는 별자리 유물이다.
유적을 조사해온 함안군과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18일 낮 13호분을 취재진에 공개하고, 그 안에서 확인된 4~5세기께의 천체 별자리 돌판을 내보였다.
13호분은 아라가야 무덤의 전형적인 특징인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이다.
말이산 주능선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봉분 규모가 직경 40.1m, 높이 7.5m에 달하는 아라가야의 최대급 고분이다.
이번 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 일본학자 야쓰이 세이이쓰가 도굴에 가까운 발굴로 유물을 수습한 지 100년만에 다시 벌인 것이다.
말이산 고분공원 입구인 함안군청에서 13호분 발굴현장으로 가는 능선길은 풍광이 뛰어나다.
기울어진 초겨울 햇살을 받으며 능선 갈래마다 흩어진 아라가야 고분들과 대숲들이 정겨운 자태를 내보이며 눈길을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말이산 능선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가장 높은 고지 암반에 봉분을 쌓은 13호분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난다.
무덤 정상부에 올라가 아래로 파들어간 좁은 통로를 따라 흰 방호복을 입고 무덤방에 들어갔다.
가장 관심을 모은 별자리 돌판은 무덤주인의 주검을 딱 마주보는 무덤방 천장 한가운데 덮개돌이었다.
아랫면에 모두 125개의 별구멍이 새겨져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검토한 결과 전갈자리, 궁수자리(남두육성) 등이 판독됐다.
성혈들의 크기와 깊이가 각각 달라 별들의 밝기 차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배덕환 연구원장은 “돌판 가장자리에는 성혈을 새긴 흔적이 안 보이는데다, 오늘날에도 명확히 판독되는 별자리를 촘촘하게 새겨넣고 무덤주인을 마주보는 위치에 놓았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이런 얼개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적에서 성혈 흔적은 청동기시대 암각화에 주로 보이는 이미지 도상이다.
후대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붓질로 그린 별자리들이 나타난다.
가야인들이 새겼다고 추정할만한 별자리 유물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경북 고령 대가야 고분에서 암각화가 윗면에 새겨진 청동기시대 고인돌 석판을 무덤 부재로 재활용한 전례가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말이산 13호분의 별자리 돌판은 양상이 다르다는 게 연구원 쪽의 설명이다.
무덤주인을 의식해 주검을 내려보는 중앙부 덮개돌 안쪽에 별자리 부분을 배치하고 판 자체도 다듬은 정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라가야인들의 천체관이 깃든 가야인 특유의 별자리 작품이라는 게 배 원장을 비롯한 조사단의 견해였다.
뒤이어 다듬어진 점판암 조각들을 벽돌 맞추듯 쌓아올린 무덤방 내부를 찬찬히 돌아본다.
네 벽면에 붉은 색이 감돌고 있다.
벽면을 진흙으로 바르고 그 위에 적색 안료를 써서 채색해놓은 것이다.
벽면의 붉은 채색은 돌방무덤, 즉 석실분에서 주로 보인다.
가야 유적권에서는 경남 고성 송학동 돌방무덤에 드러난 전례가 있다.
말이산 고분은 그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돌덧널무덤이다. 이런 유형 고분에서 붉은 채색흔적이 확인된 것도 처음이라는게 조사단의 이야기였다.
앞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도 이날 점심 나절에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대의 아라가야 왕성 추정터에서 언론 설명회를 열어 왕성터를 뒷받침하는 근래 조사성과를 공개했다.
유적은 삼봉산 기슭의 급경사진 언덕배기 토성 위쪽에 있었다.
취재진은 단면을 갈라 절개한 토성의 단면을 보며 위쪽 유적으로 올라갔다.
토성 위쪽의 1500여평 정도 되는 유적 지대에서는 망루, 창고터, 고상건물(바닥을 띄워 지은 건물)터, 수혈건물(땅을 약간 파고 지은 움막형 건물)터, 집수시설터 등 최근 발견된 특수용도의 건물 유적들이 오밀조밀하게 이어진 광경이 나타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단순한 생활가옥터가 아닌 듯했다.
건물터 주변엔 나무줄기를 태운 목탄층과 흙을 섞어 다진 높이 8m이상의 대형 토성 발굴현장이 펼쳐졌다.
성벽과 나란히 이어졌던 두줄의 목책 구멍들이 100m이상 이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발굴 브리핑을 한 강동석 연구실장은 가야 특유의 성벽 축조기법을 처음 확인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다진 성토 층 위에 나뭇가지들을 나란히 놓고 일제히 불태워 목탄층을 만든 뒤 다시 흙층을 다져 올리는 기법이라고 했다. 성
토된 흙층 위에 나뭇가지나 낙엽을 깔고 다시 흙층을 덮어 성벽의 기반을 다지는 백제 풍납토성의 부엽식 공법과는 언뜻 비슷하면서도 세부가 다른 독특한 공법이라 할 수 있다.
드러난 건물터는 14동이나 된다.
1500여평의 성터 안 조사구역 한가운데 빈 건물터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밀도있게 배치된 모양새다.
왕성터 내부 공간을 의도적으로 기획한 흔적으로 보인다고 강 실장은 설명해준다.
취재진의 눈길을 모은 건 유적 남서쪽 구석의 10호 건물터다.
판석을 세워 긴 네모꼴 건물터를 닦고, 길이 약 5m의 부뚜막과 연기를 빼는 굴뚝자리까지 놓았다.
가야권에서 처음 드러난 대형 부뚜막 건물터다.
시루 따위의 조리용 토기조각들이 부뚜막 통로 한쪽에 박혀있다.
다른 편에 있는 길이 8m×6m의 큰 건물터에서는 쇠화살촉과 작은칼, 말발걸이 등이 많이 나와 무기 등을 갖춘 창고로 추정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출토 양상으로 볼 때 수혈건물터들은 철제무기로 무장한 군사집단이 성을 지키며 주둔했던 시설들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제 더 이상 왕성추정터가 아니라 확실한 가야의 왕성터라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강 실장은 현장설명회 말미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새롭게 드러난 토성의 장대한 규모와 독특한 축조방식은 막대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자가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장한 군사집단의 창고와 거주공간이 가야계 유적에서 처음 확인된 것도 아라가야의 왕성터임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토성 부근에서 앞으로 궁궐의 자취까지 찾아낸다면, 가야사에서 왕성터 유적의 가치와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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